남들을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단 '왜?'라는 질문부터 해요. 왜 그래야 하는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이유와 원인, 유래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 따져 봅니다. 그리고 관찰을 하지요. 예를 들어, 뭔가를 시행한다고 할 때, 그것의 효과 및 효용을 살펴봅니다.
아울러, 목회에 있어서는 특히 최대한 '성경'을 기준 삼으려고 해요. 그것을 위해 성경을 부지런히 찾아보지요. 그러고 나서 뭔가를 하더라고 시행하려고 합니다. 인생 참 피곤하게 사는 성격이지요. 암튼, 이런 이유로 이제까지 나누었던 '몇 가지 시도들'이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래서 아마 저와 같은 방식으로 목회를 하는 사람은 거의 못 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행해지는 성경 공부라는 것, 보통 어떤 특정 교재를 선정해서 행하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가졌더랬죠. 일단, 제가 나름 성경을 좀 읽었습니다. 많이 읽을 때에는 한 달에 한 독씩을 일 년 동안 계속 한 적도 있지요. 신대원 가기 전에 그렇게 성경을 열심히 봤고요, 그래서 그때 성경을 어느 정도 꿴(?) 것이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말이나 책, 성경 공부 교재 같은 것을 보면, 저자가 성경을 본인 스스로 알고 집필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를 아는 게 있어요. 보통은 짜깁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교과서가 아닌 참고서로 공부한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런 것들이 보이더군요. 성경을 본인 스스로 꿰고 있지 않으니, 말씀 몇 개 가져다가 본인의 의도에 맞게 말씀을 오용하는 거죠. 사실 성경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서로 배치되거나, 논리적으로 충돌하는 구절들이 등장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부분을 감안하지 않는 것들을 자주 보았습니다.
게다가, 현시대적,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것들도 많았습니다. 본질은 같아도 형식이라든지, 표현 방식은 다를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더라고요. 말씀 암송이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말씀 암송을 시키는 성경 구절은 '개역한글판' 혹은 '개역개정판' 으로만 하고요, 본래의 의미보다는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기계적으로 외우도록 시키는 것도 있었습니다. 온갖 논리를 가져다 붙이면서 말이죠. 교재는 몇십 년 된 교재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제자훈련이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결국 성경 공부는, 성경을 토대로 성경의 내용을 배우는 것... 성경의 기록 목적은 이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17절에 근거해서..
1.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도록 하는 것.
2.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
너무나 명확하고 쉬운 목적입니다. 그런다고 할 때, 성경 공부를 하는 사람은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고, 그렇다면 2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게 맞는 것이겠지요. 이게 말하자면 흔히들 말하는 [제자훈련]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 하나님 나라 백성 다운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러면서 관찰을 해 봤어요.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소위 성경 공부나 훈련들에 대해서요. 그런다고 할 때, 너무 회의적이었어요. 무엇보다 결국 그것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이 '교회 일꾼'이었습니다. '교회에 말 잘 듣는 사람', '교회 봉사자', '사람들을 관리하는 리더' 등등... 너무 냉소적인 표현이지만 그래 보였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사역자들조차, 예수님의 제자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기껏해야 '교회용 인재(?)' 만들기, 그 정도밖에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제가 다 옳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봤어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치셨는지를 말입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은 제자들과 늘 함께하셨어요. 동고동락하셨습니다. 삶을 공유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나라 백성 다운 선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것이,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선택이라고 하셨어요. 아무래도 직접 마주하는 상황 속에서의 가르침이다 보니 보다 '직관적'으로 와닿았을 것입니다. 적용도 쉬웠을 것이고요. 말하자면, 제자 훈련, 성경 공부가 그래야 한다는 것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 사회 안에서 우리가 함께 모여 살 수 없잖아요? 각자의 삶이 있고, 삶의 터전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동고동락하기에는 불가능하죠. 그래서 생각한 것이 말하자면, 목사인 제가 저의 생각과 삶을, 마주하는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인지를 '보여주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지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목회서신'이라는 것이고, '블로그'였습니다. 저의 모든 것을 보여드리는 거죠.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삶을 모두 보여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보여드리는 것을 통해, (물론, 전부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는 위험하겠지만, 참고하시면서) '따라 하시라'는 것입니다. 나름 성경을 근거로 선택하는 삶을 보여드리고, 그것의 결과를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목회서신, 블로그를 통해 저를 길게 지켜보신 분들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아마 아실걸요?
그리고 그 선택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 온 것도, 우리 <세우는교회>가 세워져가는 것도 다 보셨을 겁니다. 믿음의 모험을 했던 것, 그래서 그 과정과 결과가 무엇인지도 다 보고 계실 것입니다. 아울러, 저라는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저를 어떤 식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빚어가시는지 다 보셨을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이 메시지를 전하는 거죠.
저처럼 해보세요.
마치, 사도 바울이 자신을 본 받는 자가 되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유명한 사람, 나와 너무 동떨어진 사람이 아니라 바로 곁에 있는 사람, 편안하게 밥도, 커피도 함께하는 사람, 곁에 있는 저를 통해 보여드리는 거지요. 생각의 방식, 선택하는 기준, 그에 따른 결과 같은 것을요.
저는 목사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라고 하나님께서 각 교회에 세워주신 자가 목사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고, 그런 삶을 공유해야 하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봐요. 글쎄요? 한국 교회가 많이 아쉬워진 것... 그것은 목사들의 일종의 '신비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사는지를 솔직히 모르잖아요? 예수님은 다 보여주셨는데, 목사들은 다 감추고 있어요. 그러면서 알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주일 설교' 때 하는 말로서 판단을 합니다. 저는 이것도 참 많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주일에 설교하는 것으로 그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요. 밥 한 끼 함께 안 먹어보고, 그 사람의 삶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존경' 운운하는 것을 보면,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아요. 그랬던 목사들 중 큰 물의를 일으키고 추락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냐고요.
암튼, 이런 이유 등으로 목회서신이라는 것을 나누는 겁니다. 10 주면 10주, 1년이면 1년 식으로 딱딱 끊어지는 커리큘럼은 아니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최대한 보여드리고 싶어요. 매일매일 보여드리는 겁니다. 솔직하게 모든 것을요. 그럼으로써 함께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가 보자고 권면 드리는 것이지요. 이것만 옳고, 다른 건 그르다가 아니라 이런 방법도 있다는 것이고요, 나름 예수님의 '교수 방법'을 현대적으로 적용한 것이라 받아들여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늘 그랬듯이 <세우는교회>에서도 유효합니다. 우리 정형화된 성경 공부나 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했다는 것으로 '자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우리 함께 살아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