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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도하심 · 날 향한 계획 · 12 / 71편

날 향한 계획(12) - 이젠 고집 안 피워요... (5)

2024.07.01

김현성 목사의 삶과 세우는교회의 시작에 이어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나눕니다. 1편부터 순서대로 읽어보세요.

우여곡절 끝에 맡게 된 대학부... 그리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젊은이들... 대학부의 특성상 다른 부서를 겸임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역 양이 그만큼 많았거든요. 제 직전 사역자만 하더라도 전임 목사 하나, 전도사 둘, 총 세 명이 맡았으니까요.

물론, 수적인 차이는 있었습니다. 출석 기준, 그 당시에는 400명 정도, 제가 맡았을 때는 200명.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었어요. 그전에는 학생들이 민항 교통대, 상해 중의대, 복단대, 이렇게 세 학교에 몰려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실 사역이 쉽죠. 한 사역자가 한 캠퍼스만 담당하면 되니까요. 그리고 거기서 리더를 세우고, 리더십이 승계되면 쉬운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투입되었을 시기에는 그 인원이 열여섯 개의 캠퍼스로 흩어집니다. 심지어 제가 나올 즈음에는 중의대와 교통대의 학생들이 거의 사라졌어요. 외국인이 중국에서 의료 행위를 할 수 없다는 법률 제정으로 인해 중의대는 학생들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고요, 교통대는 그전 한국 학생들의 일탈 행위로 인해 점점 한국 학생들을 받지 않았습니다. 굳이 학교 이미지를 망치는 것을 용납할 이유가 없었던 거죠.

대신, 외국인 학생 유치를 통해 재정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에 눈을 뜬 상하이의 다른 대학들이 학생들을 받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지난 사역자들에게는 없었던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기존의 캠퍼스에는 리더십을 승계할 후배들이 사라지고, 새롭게 생긴 캠퍼스에는 리더십을 세워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발굴해야 하는 미션이 생긴 거죠. 저도 처음, 대학생들도 처음, 그리고 언제까지 있을지 기약도 없는 유학생들... 방학만 하면 다 들어가고...

게다가 단기로 오는 어학연수, 교환학생이 늘어나면서 리더를 양육해도 바로 귀국을 해버리는 위기의 상황에 봉착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변칙을 사용했더랬죠. 정상적인 상황에서의 리더십 양육, 훈련, 배치는 통용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암튼, 전통적인 세 개의 캠퍼스는 해체가 되고 그것이 열여섯 개로 늘어났고요, 가장 거리가 먼 캠퍼스는 송장 캠퍼스(정법대, 외대, 경무대)로서 교회 기준 45km 거리에 위치했습니다. 그걸 혼자서 도맡아 해야 했으니 좀 많이 버겁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큰 문제가 하나 있었어요. 그것은 직전 사역자가 인수인계를 안 해주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페이퍼 딸랑 석 장을 설명도 없이 주고 떠났어요. 그만큼 교회에 원한이 많았나 봐요. 그리고 알고 봤더니 그는 여섯 명의 엘더를 통해 대학부를 이끌어 왔더라고요. 그러니까 본인은 사실 엘더만 관리를 했던 것이고요, 대학부의 세세한 것들은 그 사역자도 잘 모르고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암튼, 그 엘더들이 처음 만났을 때, 제게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저희는 영적 아버지와의 생이별을 시킨 교회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을 대학부 목사로 인정할 수도 없고요.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그 목사가 리더십들과 함께 이런 중보 기도 모임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김현성 목사가 대학부 목사로 오지 않게 하도록 하는 중보 기도

그러니 제가 어땠겠습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뛰었어요. 왜냐하면 그냥 젊은이들을 다시 맡게 된 것 자체가 감사했으니까요. 인상 쓰지 않고, 화내지 않고 열심히 했어요. 그랬는데 속은 많이 힘들었나 봅니다. 그해 여름에 한 달이 넘게 장염에 시달렸거든요. 그걸 보고 깨달았어요. 많이 힘들었다는 것을요. 심지어는 설교를 하러 올라갈 때 혹시라도 실수할까 봐, 지사제를 세 봉씩 털어 넣고 올라간 적도 있었답니다. 이런 식으로 한 학기가 겨우겨우 지나자, 제 진심을 알아주었는지, 하나둘씩 마음을 열더라고요. 그렇게 8년 동안 대학부 사역을 하고 왔습니다.

결국, 고집을 피웠더니 빼앗아 가시고, 항복하니까 도로 주셨던 젊은이 사역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죽어도 목사는 안 한다 했는데 목사하라 하시고, 죽어도 개척은 안 한다 했는데 개척을 해주신 것도 같은 맥락이더라고요. 그래서 깨달은 거죠. 하나님 앞에서 '죽어도'라는 얘기는 꺼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요. 이 고백이 저절로 나오게 되었던 이유, 과거의 눈물 나는 경험입니다.

이젠 고집 안 피워요, 하나님...

하나님 뜻대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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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우는교회 블로그 · 2026.10.11 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