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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도하심 · 날 향한 계획 · 69 / 71편

날 향한 계획(69) - 몇 가지 시도들(24) - 내가 너를 지켜줄게

2024.09.05

김현성 목사의 삶과 세우는교회의 시작에 이어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나눕니다. 1편부터 순서대로 읽어보세요.

예전에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전도사 사역을 할 때, 충청 지역으로 단기 선교를 간 적이 있습니다. 농촌 지역이었어요. 그때 참 많은 생각을 했더랬죠.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저수지 교회

보니깐, 농촌 지역 교회 목회자들은 매일 새벽마다 아무리 피를 토하도록 부르짖어도 교인은 줄어들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요즘 고령화에, 인구 소멸에 관한 말이 나오고 있지만, 사실 그때부터 심각했어요. 농촌에는 어르신들만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어르신들은 수명을 다하시고 한 분, 두 분 소천을 하시니, 교인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요. 그러는 가운데 목회자는 생계조차 막막하게 되는 상황이 펼쳐지는 거죠.

그래서 만약에 대형 교회들이, 어떤 교회는 예배당을 위해 수천억을 쏟아부었다고 하는데, 그중 일부만이라도, 아니 어차피 일주일에 몇 번 사용하지도 않는 생명 없는 건물이 아닌, 예를 들어 농어촌 지역의 목회자들의 생계만이라도 책임져주면 좋겠다 싶었죠. 마치 '저수지'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그분들이 마음껏 농어촌 지역 어르신들을 섬기며 그곳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런 걸 안하더라고요.

암튼, 그때 그 생각과 함께, 농촌 지역 목사님들의 사역을 살펴보니 이런 것이 보였습니다. 어르신들 댁의 형광등이라든지, 기타 여러 시설 관리에 도움도 주시고, 건강도 체크하고, 병원도 모셔다드리고, 마치 보호자처럼 어르신들의 전반적인 삶을 책임져주시더라는 거죠. 말하자면, 어제도 말씀드렸던 '필요를 채우는 사랑'을 실천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상하이에서 제가 했던 것도 일종의 그런 것이었어요. 특별히, 유학생의 경우에는 홀로 외국에 나와 있는 것이잖아요? 상하이가 아무리 괜찮은 도시라 할지라도 중국은 중국이더라고요. 많이 열악하고, 안전도 취약했습니다. 특히, 외국인으로서 법적 보호를 받기도 힘들었어요.

내국인과 문제가 생겼을 때, 외국인은 약자일 수밖에 없고,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물며, 장년들도 그러한데 이제 막 스무 살이 넘은 대학생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요. 몸은 성인인지 모르지만 아직은 애잖아요? 보호가 필요한... 사회 경험도 별로 없는, 그래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모르는.... 특히, 여학생의 경우에는 더더욱 위험한... 그래서 그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보호자

언젠가도 말씀을 드린 적이 있지만, 아마 저만큼 중국에서 응급실과 파출소를 많이 다녀본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한 10시쯤 집에 들어와 탈의하고 샤워를 하려고 들어가는데 전화가 와서 양푸취에 있는 파출소로 달려간 적도 있어요. 복단대생의 폭력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응급실은 정말 수없이 다녔는데요, 한 번은 뻑치기를 당해 얼굴이 찢어진 학생도 있었습니다. 특히, 병원의 경우에는 각 검사 및 처치 때마다 비용을 지불해야만 치료를 해줍니다. 사람이 죽어가도,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해줘요. 그래서 제가 계속 비용을 지불하면서, 그 자리를 지켜야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요, 그래서 응급실, 병원 같은 경우에는 정말 제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잠자리에 들 때면 핸드폰을 머리맡에 두고 잤어요. 혹시라도 새벽에 급한 일이 일어나면 바로 달려가기 위해서요.

아울러, 한국 학생들끼리 폭력 사건들도 있어서, 그것을 조정하기 위해 제가 직접 나서서 캠퍼스로 갔고, 당사자를 만난 적도 있어요. 제 외모가 아무래도 범상치(?) 않아서 그런지 큰 무리 없이 해결을 시켜주기도 했고요, 이런저런 일들을 나열하려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나름의 '보호자' 역할을 했어요. '보호자' 없는 유학생들에게 말입니다.

말하자면, 그런 게 생각이 나요. 특별히, 요즘 1인 가구가 증가하고, 공동체성이 약화되면서, 이와 같은 역할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보호자'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요. 사실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을 하고, 처음 우리 <세우는교회> 방향성 혹은 대상을 그렇게 잡기도 했었지요. 이와 같은 사회 현상을 인식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서로를 지켜주는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고 말입니다. 그것이 교회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이심은 분명하고요.

부디 우리 <세우는교회> 공동체가 서로에게 [보호자]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행여 서로에게 무슨 일이 닥쳤을 때, 언제든, 어디서든 달려와서 서로의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우리 <세우는교회>가 당신 곁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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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우는교회 블로그 · 2026.10.11 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