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는 삼호교회에서 수원중앙침례교회로 사역지를 옮길 때, 특별한 인도하심에 관한 내용이었고요, 오늘부터는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상하이한인연합교회로 사역지를 옮길 때 경험했던 인도하심에 대한 경험입니다.
먼저,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제 인생 전부를 갈아 넣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미안한 게 많지요. 그 당시에는 특히 가족과 함께했던 기억이 별로 없어요. 거의 교회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주말에만 사역을 하는(금요일 오후~주일 저녁) 파트 사역자임에도 불구하고, 풀타임 사역자보다 더 열심히 했어요. 새벽 4시 전후에 집을 나서서 밤늦게까지(보통 밤 10시, 11시까지) 사역에 몰두했습니다. 죽으라고 했어요. 정말...
그러면서 아무래도 사역 초기이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서툶 과 거침 같은 것이 많았습니다. 말도 함부로 해서 청년들에게 많은 상처도 줬습니다. '백만 안티'가 제 별명이었고요, 저 때문에 교회를 나간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뒤로 저를 욕 한 사람도 많았고요. 하지만 나름 변명을 하자면, 그건 '사랑'이었습니다. 사랑했는데, 표현이 서툴렀던 거죠. 정말 부끄럽고 미안함이 많은 '흑역사'입니다.
그래도 참 감사한 것은 그 진심을 알아주었다는 것입니다. 기다려주고, 기도해 주고, 기대해 줬어요. 그래서 결국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나올 때쯤 되니까, 저도 비로소 철이 좀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고, 저를 부모의 심정으로 기다려준 청년들 덕이었습니다. 이에, 마지막 설교 때 이런 고백을 했더랬죠.
저는 이제까지 제가 여러분들을 케어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여러분들이 저를 키워준 영적 아버지, 영적 어머니이십니다.
미안하고, 부끄럽고, 감사한 사람들입니다. 삼호교회의 어린이부서야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곳이었지만, 수원중앙침례교회 청년사역팀이야 제가 그토록 바라고, 기대하고, 소원하고, 사랑했던 곳, 본격적인 사역을 처음 시작한 곳이라 할 수 있기에 애정이 참으로 각별했던 곳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사실 마찬가지이고요.
말씀을 드렸듯이, 수원중앙침례교회는 목사 안수를 받으면 사임을 하고 교회를 나가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절대 나가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 사랑했거든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규정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게 너무 상심이 되더라고요. 낙담이 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하게 된 것이었지만, 그 규정은 합법적(?)으로 사역자를 내보낼 수 있는 하나의 구실뿐이었더라고요. 왜냐하면 저와 목사 안수를 받은 목사님 중 한 분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그 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선택받지 못한 자'였던 것이지요. 수원중앙침례교회는 저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상하이한인연합교회를 통해 저를 선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