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같은 성격에 무려 9년이나 머무를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볼 때, 먼저는 '제가 말 귀를 못 알아 들어서'였던 것 같고요, 다른 한 가지는 '소망부 어르신들' 때문이었어요.
제가 소망부, 지혜대학을 맡게 된 경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죠? 제가 맡고 싶어서 맡게 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죄송한 말씀일 수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다들 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약자'인 제가, 이제 막 처음 상하이에 부임을 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선택권도 없었던 제게 맡겨진 것은 남들이 먼저 선택하고 남은 부서였어요. 분명, 상하이로 들어갈 때 '청년부'를 맡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답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제가 처음 지혜대학에 갔을 때, 그 당시 소망부의 구역장님이시자, 몇 년 전 소천을 받으신 고 홍석분 권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참고로 소망부는 믿음이 있으신 분들의 구역 모임이고, 지혜대학은 믿음의 유무와 상관없는 소위 '문화 센터' 성격의 모임입니다.)
목사님, 늙은이들 맡게 해서 미안해요.
그랬더니, 아마 예전 대한 노인회 회장이셨던 '최완규 어르신'이셨을 거예요. 그분은 신앙이 없으십니다.
어... 목사님, 목사님은 늙은이들한테 무슨 취미 같은 게 있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어르신 한 분... 아마 권인애 권사님(그 당시에는 집사)이셨을 겁니다.
취미는 무슨... 교회서 하라고 하니까 하는 것이겠지 뭐...
그 말씀을 듣는데, 마음이 먹먹하고 또 죄송했어요. 그간 어르신들의 상처가 깊이 느껴져서요. 생각해 보니 당연히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안 그래도 자식 손주들 때문에 외국에 나와, 말도 안 통하고, 음식도 안 맞고, 병원도 불편하고, 한국에 계셨으면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오셨는데, 교회에서마저 소외를 경험하니 상처가 되셨던 것입니다. 매년 담당 목사가 바뀌는 것을 통해 그리 생각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거죠.
그래서 그때 하나님 앞에서 다짐했어요.
하나님, 제가 상하이에 있는 동안은 제가 어르신들 책임질게요. 그리 허락해 주세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외국에 있기에 찾아뵐 수 없는 부모님 대신, 어르신들을 부모님처럼 여겼어요. 저 자신을 내려놓았습니다. 목사 그런 거 없었어요.
몸이 불편하셔서 신을 신기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 손가락 넣어서 신 신겨드렸고요, 믹스커피만 아시던 어르신들께 '카라멜 마끼아또'의 신세계를 선물해 드렸고요, 1년에 한 번씩은 꼭 해외여행을 시켜드렸어요. 그것을 통해 '창살 없는 감옥'에서 잠시나마 자유를 누리게 해드렸어요. 그 기간에는 밥, 빨래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었죠.
그랬던 저를 참 이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하자면, 어르신들이 저를 친 자식처럼 여겨주셨고요, 저를 지켜주셨어요. 매년, 담임 목사를 찾아가서 이렇게 부탁을 하셨거든요.
목사님, 내년에도 우리 김현성 목사님이 이 늙은이들을 좀 맡게 해주세요.
어르신들,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말하자면 저를 지켜주셨던 겁니다. 정말 아무도 저를 못 건드렸어요. 심지어는 저희 아내도 어르신들 앞에서는 조심해야 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