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우는교회는 '의도적인 작음'을 추구합니다. 솔직히 우리 세우는교회는 외적으로 커질 수 없는 한계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기도 하지요.
일단, 우리 세우는교회의 방향성이 그러합니다. 기성 주류 교회에서는 말하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불편한 이야기 그래서 의도적으로 피하는 이야기하지만 '하나님 나라 가치와 원리'에 따른 것들을 분명하게 이야기를 해요. 지난 '12.3 내란 사태'와 그전부터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것들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 외에 무지성적인 '창조 과학'에 대한 맹신도 경계하며, 주류보다는 비주류 그리고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있어요. 그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교회를 떠난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와 근거를 분명히 댈 수가 있어요.
아울러,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서로에 대해 존중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사람(의 생명)을 존귀히 여기자는 측면에서 성경의 예언자들의 목소리를 현대적으로 대언한 것일 뿐임을 밝힙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다양한 것들을 품고 계신 광대하신 하나님이시며, 공의와 정의의 주님이십니다. 성경적 정의라는 것은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끈질긴 편애'임을 믿고 있고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속한 '느헤미야 교회협의회'의 신앙고백과도 일치합니다.
한편, '느헤미야 교회협의회'라는 것도 우리의 성장이 제한적인 것에 한몫을 할 것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나 그 외 여러 '메이저 교단'이 아닌, 그저 '마이너', 그것도 '협의회' 소속이다 보니, 문턱을 넘기가 망설여질 수 있다고 봅니다.
게다가 우리 교회는 소유한 교회 건물이 없습니다. 소유는 물론, 정기적으로 몇 년 동안 임대하여 '우리 교회 건물(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도, 그래서 주소를 명시할 수 있는 장소도 없어요. 그저 주일에만 예배 공간과 교제 공간을 4시간 정도 빌려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주중에는 교회에 올 수도 없어요. 건물도, 간판도 없는 교회이다 보니, 그것이 분명 하나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봐요.
이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요. 그래서 우리 교회가 외적으로 성장을 할 수 없는 면이 있을 것이라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쳐도 '굳이' 우리 교회에 사람이 몰려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열려 있고 누구나 오면 환영을 하는 '환대의 공동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동체'가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의 정체성 및 교회라는 본질적 의미를 구현해 내는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지난날의 교회를 되돌아볼 때, 물론 제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그럼에도 성경에서 제시한 교회의 모습, 공동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결코 '교회이기는 힘들지 않을까'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저 종교 생활을 하는 곳, 어떤 의미로는 사교 장소 정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사실 한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누가 누구인지를 몰라요. 교회는 효율적인 '조직 관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야말로 '관리'인 거죠. 한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옆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대화 한 번 나눠본 적이 없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안에서 누가 울어도 함께 울기가 힘든 거죠. 자신과는 무관한 사람,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밥이라도 한 끼 먹어보고, 서로가 누구인지를 알며, 그러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하면서 의지적인 사귐, 진정한 몸을 이루기 위해 지속적으로 관계를 쌓아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해가 바뀌면 '목장', '구역'도 바뀌고, 교회 안에서 각기 다른 곳에서 바쁘게 봉사를 하다 보면 교제할 시간과 에너지는 점점 더 줄어들며, 그렇게 멀어지는 것이지요. 한 번 지난 교회들을 되돌아보셔요. 그랬던 관계가 얼마나 많았는지...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교회 안에서 만났지만, 과연 그들과 지속적인 사귐을 이어나가고,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해 나가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말하자면, 이런 이유 등으로 설령 성장을 하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커나가면 좋겠다 싶습니다. 만약에 성장을 멈춘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고요. 그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을 되돌아보고, 또 관찰을 해볼 때, '죽을 때까지' 남아 있는 관계, 진정한 친구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저 아는 사람이 많은 것보다, 진짜 마음과 삶을 나눌 수 있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진정한 식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의 터전이 물리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지향하는 것을 이루려면 물리적으로도 이왕이면 가까운 것이 좋아요. 그래야만 곁에서 서로를 지켜주기가 수월하고, 만남도 보다 활발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함께 마음과 머리를 모으며 해결해 나가야 할 사안입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가 흩어져 살고 있는 상태에서는, 서로의 삶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스며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존경을 받던 목회자들도 속절없이 넘어지는 것을 계속 마주하는 작금의 한국교회의 현실을 볼 때, 그렇게 된 이유가 어쩌면 이런 것도 있을 것 같아요. 교회의 외형이 너무 커져버린 거죠. 커지면서 부와 권력도 쌓이고, 서로가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하다 보니, 그 안에서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을 것이고, 목회자들의 경우에도 그저 자신을 '경영인' 혹은 '소유주' 정도로 여기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물론, 교회의 크기가 작다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교회의 외형이 커져갈수록 '유혹' 또한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며, 계속 말씀을 드린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세워나가고, '몸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저 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하면서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세워나가면 좋겠다 싶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함께 세워져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에베소서 2장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