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럴 수 있지요. 이제까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에 따라 판단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러면서 소위 '능력'이 있고, 뭔가를 수행해낸 '성과'가 있는 사람일수록, '능력주의'를 '무의식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있더라고요.
능력주의(Meritocracy)는 개인의 능력을 기준에 따라 정량적으로 평가하여 그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주어지는 사회를 추구하는 정치철학이다. 경제적 자유주의와 연관이 있다.
가장 많이 통용되는 능력주의의 예는 시험을 통한 개인 능력 평가이다. 가장 흔한 예로 IQ 테스트가 있다. 또한, 성과, 지능, 학력과 교육에 따라 능력을 평가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능력주의는 실용주의나 공리주의같이 정부의 관료나 특정 지도층을 선발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대학의 학위가 현대 능력주의의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이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학위가 평가의 기준으로 사용되며, 고등 교육일수록 더 많은 능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공통된 기준은 없으며, 교육 자체만으로 능력이 있다고 보는 것은 아니며, 경험과 숙련된 기술, 결과에 따라 다각적으로 평가를 하고 있다.
출처 : 위키백과
그래서 조금 아쉽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면, 하나님 나라 원리와 가치에 따라 판단을 하고 행동해야겠지요. 허나, 그런 부분들이 많이 부족해 보이거든요. 역시 저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우리 모두 그러한 과정의 수행을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다움을 드러내야만 할 것입니다.
예전에 목회를 먼저 하신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제가 아버지의 성향을 따랐는지,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납득이 되지 않으면 마음과 몸이 움직이지 않아요. 믿음의 영역, 전적인 순종을 말씀하실 때는 예외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곧이곧대로 믿습니다. 다만, 문자적 해석 및 적용은 지양합니다.
암튼, 아버지께서는 예장 통합 출신이고, 장로교 쪽으로의 신학교 권유를 받으셨지만, 그 당시 가장 '성경적이고 깨끗한 교단'이라고 판단이 되셨던, '성서침례교회'를 선택하셨습니다. (성서침례교회는 미국 남 침례교의 자유주의 흐름에 반발하여 나온 교단으로서 근본주의적인 교단입니다. 아울러, 킹 제임스 성경만을 성경으로 여기는 성경침례교회와는 다른 곳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 말씀을 하셨어요.
결국, 똑같더라.
본인은 그 당시 소신에 따라 그 교단을 선택하셨지만, 모인 사람들과 흘러가는 모습을 보니, '결국에는 다른 교단과 크게 차이가 없고, 사람이 모인 곳이니 그런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씀을 하셨어요. 정도의 다름은 분명 있을 뿐, 완전하거나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저는 우리 <세우는교회>도 '그렇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세우는교회>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교회일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느헤미야교회협의회>에서도 보여요.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교회의 연합은 필요하되, 그래도 한국 교계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원리와 가치'를 표명하고, 그것을 위해 몸부림을 치되, 실천으로까지 나아가는 거의 유일한 '교회 협의회'라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세우는교회>가 몸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드렸죠? <느교협> 안에 열악한 교회들이 많더라고요. 이제 설립한지 겨우 만 3년이 지난 우리 <세우는교회>가 <느헤미야교회협의회>에서 규모가 큰 교회라고요. 여전히 열악한 교회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한 공동체로서 그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이런 맥락에서 회비도 꾸준히 그리고 넘치도록 납부하면서 활동에 적극적으로 도우려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인식이 이래요. 수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성장이 없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요. 그러면 목회자가 '소명'의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회를 그만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 논리의 이면에는, 규모의 성장을 이룬 교회 혹은 그 교회의 목사만 목회를 하는 게 맞지 않느냐, 그런 교회(목사)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그 교회(목사)를 사용하시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저도 목사로서 수많은 교회와 목사들을 관찰하면서, 답답함을 때로는 분노까지도 느낀 적이 있으니까요. 너무 무책임하고, 기본적인 상식도 없고, 이성적 판단에 따라 목회를 하지 않고 있으되, 그에 따른 모든 결과와 책임을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돌리는 것을 너무 많이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것도 감안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길은 분명 좁은 문, 좁은 길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흐름을 거스릅니다. 세상이 하나님 나라와 멀어질수록 교회는 어려워지는 것이 맞아요. 그런다고 할 때, 작금의 세상은 점점 하나님 나라와 멀어지고 있습니다. 교계의 흐름도 그래요.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길을 따를수록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게다가, 우리 <세우는교회>처럼 '선명한 색깔'을 드러내고, '아닌 것을 아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소위 '인기'가 없습니다. 소위 진보적인 사람들일수록 따지는 것도 많아요. 그래서 주머니가 인색한 경향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크지요. 물질이 과할 정도로 넉넉한 교회는 소위 '보수적인 교회'입니다.
한편, 이런 것도 있지요. 인구 소멸 지역의 교회... 거기에서는 목회자가 아무리 노력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교인은 줄어들고, 목회자의 생계도 막막해질 수 있어요. 당연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사안을 고려해 볼 수 있겠고요, 그런다고 할 때 과연 '능력주의'라는 관점에서 교회와 목사들을 판단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어려움을 우리가 그리스도의 공동체,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서 좌시만 해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도와야죠. 함께해야죠. 더더군다나 바른길을 가고, 하나님 나라를 구현해 내기 위해 이름도 빛도 없이 몸부림치고 있는 소외된 이들을 도와야지요. 최근 홍장원 국정원 전 차장이 '진실을 말하기가 이렇게 힘들다'라고 했던 것처럼, 진실한 삶을 사는 것이 이리도 힘들기에 기꺼이 그렇게 사는 이들 곁에 서야겠지요. 우리마저 그들을 외면하거나 '능력주의'의 관점에서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 가치는 이런 것이잖아요?
기대하고, 속아주는 것.
설령, 선의를 오용한다 할지라도 기대하고 속아주는 것입니다. 겨자씨를 한 움큼씩 집어 흩어 뿌리는 것입니다. 어느 씨앗이 자랄까를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흘려보내는 거예요. 일단은 '내가 살아야 남도 살릴 수 있으니' 우리 <세우는교회>부터, 우리 <느헤미야교회협의회>부터 살려내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의 '흘려보냄'을 시행하고자 합니다.
저는 우리 <세우는교회>가 은혜 넘치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환대와 포용의 공동체이면 좋겠습니다. <세우는교회>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은혜'에 젖어들면 좋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시행하는 것이 일종의 '보편적 복지(정책)' 같은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 따뜻한 밥 한 끼 먹고 가면 좋겠어요. 책 사드리고, 이런저런 것을 제공해 드릴 테니 그저 누리시라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은혜라는 것이니까요. 오감의 체험을 통해 막연한 은혜를 구체화해나가자는 것이지요.
부디, 이런 맥락의 일들을 해나가는 우리 <세우는교회>, '은혜주의'를 따라가는 우리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되실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