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련 씨는 자신의 책 '약함을 돌보는 단어들'에서 이런 얘기를 해요.
사람들은 보통 한창 꽃을 피워 절정을 이루는 시기에는 많은 친구가 곁에 있지만, 나이 들어 시들어 가는 시기에는 찾아오는 사람도 반기는 사람도 드물러 외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누구든 시들어 가는 존재를 사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김주련, '약함을 돌보는 단어들'
정말 그렇더라고요. 저희 아버지께서도 어떤 분들의 사례를 말씀하시며 자식들이 부모를 일 년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하더라고요. 나이를 먹어 갈수록 사람은 외롭더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마 아직 노년에 이르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 현재의 바쁜 삶과 기타 여러 가지 이유 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 안에 분명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어르신들'의 삶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아서 이런 것들을 모를 수도 있지만, 수많은 어르신들이 외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성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극우 집회'에 어르신들이 많은 것, 유튜브 알고리즘에 빠져 그릇된 선동에 어르신들이 많이 빠지시는 것은 어쩌면 '외로움'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나마 거기에서는 외로움을 덜어낼 수도 있고, 그것을 통해 외로움을 달랠 수 있으니까요. 이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는 어르신들의 그러한 행태에 대해 비난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외로움'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게 있더라고요. 제 인생의 경험에서도 그러하고, 주변을 관찰해 보니 '끝까지'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런다고 할 때, 관계(맺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저 피상적인 만남을 여럿 갖고, 그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평생' 함께 익어갈 수 있는 사람들과 신뢰의 관계를 쌓아가는 것이 맞는 것일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삭막한 도시보다는 마을 공동체를 이루며 공동체적 돌봄을 서로에게 행할 수 있는 시골 같은 곳에서 사시는 어르신들의 삶이 보다 건강하고 활기차 보이는 것들을 보았어요. 저희 부모님의 삶이 그러하시거든요. 종합병원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도시 외곽에서 공동체를 이루었을 때 그나마 노년의 삶이 안정되어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평생 함께 신뢰를 쌓아온 사람들, 무엇보다 같은 하나님 나라 가치와 원리를 공유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더욱 좋겠다 싶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의 물리적 거리가 멀면 어렵습니다. 점점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의 공동체로 모여사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지혜는 뻔히 보이는 미래를 대비할 줄 아는 것입니다. 풍년의 때에 흉년의 때를 준비했던 요셉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회와 우리의 노년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일반 계시'를 통해 말씀해 주셨지요. 미래 예측과 전망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도 이 나이가 될 줄 몰랐습니다. 상해에서 귀국을 한 지 벌써 만 4년 차가 되어 갑니다. 시간이 그만큼 빠르다는 것이고요,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 같은 노년의 삶이 조만한 현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때를 함께 지혜롭게 준비할 줄 아는 우리 세우는교회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두 사람이 혼자보다 더 나은 것은, 그들이 수고하여 더 좋은 보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넘어지면,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그를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떻게 따뜻할 수 있겠는가? 혼자 있는 사람은 쉽게 패배하나, 두 사람이 합하면 그에게 맞설 수 있으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전도서 4장 9-12절